The Crumbling of Time has come!
포스터디자인 신해든
사운드디자인 NO_ON 총괄 제크 |
SHOW
TELL
<시간을 깨는 시간에 관하여/ 여기 항아리가 있습니다.>
꿈을 꾸었습니다. 꿈에 숲과 펠리컨이 나왔습니다. 펠리컨은 어디론가 날아갔다가 물을 길어 왔습니다. 넓은 강에서 부리 한가득 물을 담고 날아와 숲에 물을 쏴, 하고 부었습니다. 사람들은 펠리컨이 시간을 가져왔다고 말했습니다. 펠리컨이 숲에 물을 가져다주지 않으면 시간은 더 이상 흐르지 않고 그대로 고여 버릴 것이라고 마을 사람들은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펠리컨이 날아오르는 것을 그치지 않았기에 시간은 흐르고 또 흘렀습니다.
꿈에서 깨어날 때 저는 약해집니다. 해변으로 내몰린 바다표범처럼 쓸려오는 파도에 맞으며 누워 있습니다. 그 상태로 몇 시간을 더 잘 수 있습니다. 잠을 너무 많이 잡니다. 잠을 너무 많이 잤을 때의 문제는 꿈을 삶처럼 살게 된다는 점입니다. 아침밥을 하는 것보다, 출근을 하는 것보다, 꿈속에서 고양이가 되어버린 내 인생이, 끝없이 나타나는 닫힌 문들이, 아파서 번데기가 되어버린 친구가 더 시급합니다. 어렴풋이 꿈이라는 사실을 알아도 별 도움이 안 됩니다. 파도를 또 다른 파도가 덮치듯 꿈의 시간과 현실의 시간이 엎치락뒤치락합니다. 이때, 시간이 이상하게 흐릅니다. 꿈에서 반년이 흘러도 깨어나면 십 분밖에 흐르지 않았거나, 꿈에서 일 분만 살아도 현실에서는 두 시간이 훌쩍 지나가 있습니다. 멋대로 흐르는 시간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 모든 게 숲으로 시간을 나르는 펠리컨의 짓이 분명합니다.
기억에 관하여 얘기해도 좋을 것입니다. 꽤 자주 데자뷰를 경험합니다. 호빵 집을 지나 완구점을 지나 늘어선 가로수들을 지나 고양이 한 마리의 꼬리를 봤고, 그 뒤에 친구가 손을 흔들었습니다. 이 일을 분명히 예전에도 겪은 기분이 듭니다.
시간에 금이 갔다! 나는 혼자 중얼거립니다. 하나의 시간이 다른 시간으로 가서 화살처럼 꽂혔다. 그런 시간이 있습니다. 시간이 휘파람을 불며 나를 놀리는 것만 같습니다. 그런데 왠지 싫지 않습니다. 어떤 암시도 의도도 없이 시간이 장난을 칩니다. 하지만 이 느낌은 이내 사라지고 나는 다시 현실에 파묻힙니다.
지나간 일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나의 시간이 영생합니다. 어떤 시간이 파도처럼 고인 채 끊임없이 달려듭니다.
여러분에게 시간이란 어떤 것이고, 시간을 깨는 시간은 무엇인가요. 이런 상상은 어떤가요.
여기 항아리가 있습니다. 항아리에 들어 있는 물은 시간입니다. 이 물을 마시지 않으면 시간은 영영 멈춰버립니다. 마을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사람들에게 시간을 나눠줍니다. 숲에서 가져온 시간이지요. 사람들은 줄을 섭니다. 배급원은 커다란 항아리에서 시간을 길러 양철통에 부어 줍니다. 쏴, 시간을 붓습니다. 어쩌면 저는 시간을 친구에게 다 줘버릴지도 모릅니다.
여기 시간 항아리가 있습니다. (이 항아리를 상상하세요)
항아리에서 물을 한 바가지씩 퍼서 마십시오.
이 물은 당신에게 15분의 새로운 시간을 제공할 것입니다. 이 15분의 시간은 현실에 덧대어진 상상의 시간이며 일상의 시간에서 이탈한 시간입니다. 이 시간은 기억 속에 잔상처럼 남아 있는 시간이며 활처럼 늘어나는 시간과 바지를 입고 다니는 시간이자 거울에 비친 의외의 시간, 떨어트린 안경을 밟았을 때 발생한 새로운 시간, 짐을 다 빼고 이사 가는 날 벽지처럼 남아 있는 시간, 장치에 의해 늘어나고 줄어드는 고무줄 시간과 맞춰지지 않는 퍼즐 같은 시간, 새롭게 배치된 시간 그리고 당신을 그 자리에 붙들어 두었다가 모르는 사람처럼 떠나보내는 시간입니다.
나가는 길에는 숲의 정수리에 시간을 붓는 펠리컨을 떠올리세요.
당신은 기억을 잃습니다.
글_문보영(시인)
김현민은 오늘 하루를 이불킥으로 깬다.
김현민은 경험한 것, 생활의 풍경에서 발견하는 순간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기록하고 조합하는 작업을 한다.작가는 하루를 이루고 있는 것이 지금 지나고 있는 객관적인 시간만이 아닌 자신이 가지고 있는 기억 속 이미지들이 떠오르고 쌓이면서 잔상처럼 남아 하루를 보내는 경험을 만든다는 생각에서 출발해 과거에 보았던 주관적인 시간의 이미지들을 가지고공간을 만든다.
_김현민 작가노트중
이빈소연은 세대론을 바지로 깬다.
이빈소연은 곤란하다. 세대론을 바지로 깨보겠다고 했지만 세대론은 그간 논리를 폭신하게 뭉개어 그의 작업이 거쳐야할 타당성을 애교스럽게 무사통과하도록 도왔다. 세대론의 세계 아래 생겨나는 여러 단어들과 표현들의 함의에 대한 논의를 대거 생략한 채로도 세대론이 주는 느낌적인 느낌만으로 전달하고자 하는 바가 빠르게 배달되는, 세대론의 바로 이런 두루뭉술 매직 때문에 오히려 세대론을 깨야한다는 아이러니가 그 앞에 놓여있다.
작가는 ‘우리가 대체 왜 이러나’를 이야기할 때에 여기 저기 다양한 곳과 모습으로 포진해있는 ‘우리’를 한데 모으는 손쉬운 전략으로 세대론을 불러냈음을 고백한다. 이빈소연은 <시간을 깨는 시간>에서 세대론이 개인과 사회를 컴팩트하게변형하여 여러 변수를 차단하는 것은 아닐 지 자문하며 일반화를 또 다른 일반화로 깨어 맞불을 놓는다. 작가는 세대론이생성한 시간대를 무력화하는 바지(Pants)를 만들고 자본이 세대론을 광고하는 방식을 차용하여 그의 바지를 홍보한다.
_이빈소연 작가노트중
장멍날은 물리적 시간을 주물러 깬다.
장멍날은 영상 매체를 보고 다루는 일에 익숙하며, 그림으로 이루어진 책 안에 장르의 문법에 따른 여러 가지의 간격으로서사를 넣는 작업을 수행한다. 때문에 그에게는 시간이란 처음에서 끝으로 흐르는 것, 그로 인해 당연하게 생성되어 있는것이라는 관념으로 박혀있다. 작가에게 시간을 깬다는 건 그 안에서 시간의 일부분을 꺼내어 딜레이 시키거나(1), 깃들어있는 시간을 거꾸로 흐르게 하는 것(2), 뒤죽박죽 섞는 것(3), 돌출 시켜 보고(4), 보다 작은 단위로 축소하고(5), 쪼개보는 등(6) 찰흙처럼 시간 을 주무를 수 있는 여러 경우의 수를 탐색하는 과정이다. 장멍날은 <시간을 깨는 시간>에서 위과정에서 찾아낸 물리적인 시간을 주무르는 방법을 전시장 군데군데에 배열한다.
_장멍날 작가노트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