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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OW&TELL
_사진 박선영
동백꽃 피다
70년이 지나 제주 4·3은 이들에게 늦게 다가왔다. 과거에 자행된 학살은 현재 그것에 대응할 수 없는 자에게 충동을 남겨놓는다. 죽음의 기억은 살아남은 자에게만 존재하므로 70년 쌓인 그 무게는 갑자기 맞닥뜨린 이들에게 매우 버겁다.
무게에 대응하여 굳어 버리지 않기 위해 궁리를 해본다. 긴 시간 억압되어 이분법으로 엉긴 기억을 분별하기 위해서는 방법이 필요하다. 이들은 4·3을 정의하는 언어들로부터 잠시 벗어나 보기로 한다. 대신 살아있는 경험자를 만난다. 그 당시 살인이 벌어졌다는 장소들을 가본다. 불타 없어졌다던 마을의 빈터를 방문해본다. 손안의 스마트폰으로 정보를 검색하고 호출하는데 익숙한 이들에게 장소로 자신이 소환되는 방법은 소풍처럼 신선하게 느껴진다.
《동백꽃 피다》전시는 김유민, 김준환, 박선영, 장윤미 4인이 수행한다. 이들은 찾아낸 정보를 거부하거나 받아들이면서 의도적 경험으로 생성된 4·3이라는 머릿속 잔상을 물화한다. 만약 서로의 합의점을 언어로 도출하라면 “이런 일이 다시는 벌어지지 않았으면 좋겠어.”라고 추상적인 결론이 나오는데 아직은 어쩔 수 없이 그러하다. 사건 발생으로부터 시간이 지났으므로 감정적 거리가 유지되기 때문이고, 또 이제 와 앎과 동시에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에 대해 양자택일을 해야 하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이런 이야기조차 비장한 각오가 없이는 시작할 수 없었다고 한다. 4·3의 참상을 형상화하려는 노력은 1994년부터 제주에서 예술가들에 의해 매년 제의처럼 이루어져 왔다. 1992년에는 4·3 미술의 시초라고도 할 수 있는《동백꽃 지다》전시가 강요배 화백에 의해 있었다. 흰 눈 위에 통꽃으로 툭 떨어지던 동백꽃 머리가 소리 낼 수 없던 아까운 죽음들과 같다고 하여 붙인 전시 제목이다.
《동백꽃 피다》의 ‘피다’는 두 가지 주어를 품고 있다. 하나는 ‘침묵의 시간을 버텨 저항한 제주 사람들’ 이다. 다른 하나는 ‘4·3의 현재를 목격한 자의 기억’이다. 시공을 거쳐 전달된 메시지에 대한 답신은 이제 목격자의 몫으로 남는다.
글_박선영
_사진 박선영